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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혹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양심 방역’
    KOREA 2017. 10. 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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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양심 방역’

    [2017 청렴 사연·수기 공모전] ③ 일반부문 최우수상

    청탁금지법의 시행 등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으로 바뀐 삶의 이야기 등 청렴과 관련된 국민들의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세번째를 맞이한 공모전 우수작을 정책브리핑에서 공유한다. 과연 우리는 생활 속 청렴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청렴의 의미를 국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해보자.(편집자 주)

    * 수상자 중에는 공익신고자가 포함돼 있어 개인 실명 등은 밝히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대학 졸업 후 첫 취업에 실패한 나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도 여러 번 보러 다녔지만 번번이 취업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취업이 금방 될 줄로만 알고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나는 한 달 두 달 취업이 늦어지자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취업만 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나의 전공이나 적성, 회사의 규모, 성장 가능성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작은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만큼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처음의 각오와는 달리 거의 매일 이다시피 하는 야근과 이어지는 술자리로 나의 건강과 생활은 황폐해지고 있었다. 결국 회사를 다닌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사표를 내고 다시 구직자의 신세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우리나라는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어 국내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자영업자들도 한순간에 거리에 나앉는 등 그야말로 국내 체감경기는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렇듯 국내 경기가 최악의 상황에서 일반기업체에 입사하겠다는 나의 희망과 각오는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고 이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렇게 공무원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즈음 아는 지인으로부터 ○○보건소 방역 관련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제의받게 되었고 부모님에게 눈치가 보였던 나는 얼떨결에 방역관련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공무원 공부는 계속하면서 주경야독하겠다는 각오로 나름의 위안을 삼았다.

    ○○보건소 방역업무는 방역관련 장비가 갖추어진 차량 1대와 그 차량을 운전하는 계약직 공무원 한 분과 그 차량에 함께 탑승하여 어깨에 개인용 방역장비를 메고 다니면서 방역을 하는 아르바이트요원 6명 정도가 함께 움직이는 형태였다.

    ○○보건소 방역은 연기가 나는 연막소독이 아닌 살충원액에 물을 희석하여 사용하는 분무소독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효과는 분무소독 방식이 더 좋다고 하였다.

    보건소 관계자분의 설명에 의하면 연막소독은 공기 중에 소독성분이 금방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효과가 반감되는 반면 분무소독은 살충액을 하수구나 물이 고인 곳에 직접 분무하기 때문에 모기 유충을 박멸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방역차량에 설치된 방역기구는 주로 방역구역이 넓은 도심하천 주변이나 수풀이 우거진 야산 등지에서 방역작업을 담당하였고 그럴 때면 우리팀원 모두는 기다랗게 호스를 펼쳐 중간에 줄이 엉키거나 꼬이지 않게 단단히 줄을 잡고 있어야 했다. 차량에 설치된 기계에서 분무약이 분사 될 때는 호스의 압력이 높아 자칫 줄을 놓치기라도 하면 안전사고로 이어줄 수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차량방역과는 달리 분무기를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하는 개인방역은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좁은 주택가 하수구나 물이 고인 웅덩이 위주로 작업을 실시하였는데 새벽(7월~9월), 오전, 오후 각각 2시간 정도 방역작업을 하고 작업이 빨리 끝나면 개인별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개인방역은 무거운 살충액을 어깨에 메고 도보로 이동하면서 작은 하수구 구멍 하나하나에 일일이 소독액을 분사해야 하므로 꼼꼼함과 성실함이 요구되었다. 또한 소독액을 분사하면서 걷다가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깨에 메고 있는 무거운 분무통으로 인해 더 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항상 주위환경에 신경을 쓰면서 작업을 해야 했다.

    문제는 이 개인방역이 쉽게 유혹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차량방역은 팀원 모두가 함께 작업하는 반면 개인방역은 개인별로 맡은 구역만 책임지고 방역을 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요령을 피우거나 유혹의 손길에 넘어갈 수 있었다. 각자 뿔뿔이 흩어져 방역을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지시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업환경이었다. 우리팀원 중에도 대충 빨리 일을 끝내고 자유 시간을 길게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개인방역은 방역차량으로 함께 이동하여 각자 맡은 위치로 흩어져 방역하는데 살충액을 다 사용하고 전 팀원이 모두 모이면 대기실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여 다음 방역 시간까지 개인시간을 갖는 구조였다.

    이러니 어느 누구 하나라도 늦게 방역을 마치면 팀원 전체가 그 한 명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가끔 눈총을 받는 팀원도 있었다. 그 눈총을 받는 팀원 중에 한명이 바로 나였다.

    나는 내가 맡은 구역은 꼼꼼하게 방역을 하려고 했고 살충액이 완전히 다 떨어질 때까지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살충액을 분사했는데 일부 팀원은 대충 살충액을 뿌리고 남는 살충액을 아무도 안 볼 때 하수구 구멍으로 버리는 일도 있었다.

    “어이! 유주사, 니는 너무 꼼꼼한 게 탈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충 하고 남는 액은 아무도 안 볼 때 구멍으로 비우고 빨리 모이라, 알겄나?” 팀원 중 나이가 많은 형이 답답하다는 듯이 나에게 한마디 하였다.

    “아니, 꼭 누가 알아준다고 해서 열심히 하는건 아닙니다. 그냥 저는 저한테 할당된 구역을 책임지고 작업할 뿐입니다. 그리고 엄연히 살충액이 남아 있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버립니까? 이것도 엄연히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내가 이렇게 강력하게 나가자 그 형은 다시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기분 나빠하는 얼굴빛은 숨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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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드물기는 하지만 자기집에 소독좀 해 달라면서 우리가 개인방역을 하는 중에 슬그머니 다가와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지폐를 찔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가정집을 개조해 음식집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자주 이러한 부탁을 하시는데 가정집에는 사사로이 방역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돈으로 회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 팀원 중에도 가정집에 소독을 해주고 담뱃값 좀 받았다면서 은근슬쩍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날은 정원이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소독을 해주고 값비싼 음식을 대접받기도 했다면서 다음에 또 소독을 해 주기로 약속했다는 등 규정에 벗어난 일을 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고 우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지는 분위가 팽배해 있었다.

    솔직히 나도 그러한 제안을 받은 적은 있지만 내 양심상 그럴 수는 없어서 정중하게 거절하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걸 한번 안 들어주느냐’면서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욕을 들으면서까지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자괴감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끝까지 내 자존심을 지켰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해 11월말 모든 방역일정이 끝나고 우리 팀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헤어졌고 나는 다시 공부에만 매진하기로 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주경야독하면서 시험공부와 방역일을 병행하기로 내 스스로 위안을 주려고 했지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방역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듬해 봄쯤으로 기억한다. 생소한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작년에 방역차량을 운전하던 계약직 공무원분이셨다. 올해도 방역 아르바이트 요원을 뽑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내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더라면서 내가 일을 하기로 동의만 한다면 ○○보건소 행정담당 공무원에게 말을 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적당히 시간만 떼우려고 하고 책임감도 없어 보였는데 나는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정말 성실하게 일을 해주어서 항상 기억에 남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공부에만 매진하겠다는 나의 각오를 말씀드리고 정중하게 거절을 하였다.

    비록 아르바이트로 몇 개월밖에 일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에 대해 그분에게 정말 고마웠고 나 자신에게도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 후 나는 주경야독 대신 도서관에서 수험서적과 씨름하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지방 공기업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때의 소중하다면 소중한 경험이 지금의 내가 몸담은 직장에서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근무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준 것 같다.

    다른 사람도 다 시간만 떼우고 대충 일하는 방식으로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한다한들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에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임한다면 언젠가는 그 노력의 대가는 빛을 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해질 수 있는 행동은 그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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